2020년 5월 27일 은평교회 수요성서연구

posted May 27, 2020 Views 16 Likes 0 Replies 0

찬송 270

 

말씀 :누가복음 21 : 1- 4

 

과부의 두 렙돈

 

1. 예수님은 성전에서 어떤 자들이 연보대에 헌금 넣는 것을 보셨읍니까(1) ?

 

가난한 과부는 얼마를 넣었읍니까(2) ?

 

이 때 과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

 

 

2. 예수님은 누가 가장 많이 헌금을 했다고 하셨읍니까 (3)?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4) ?

예수님은 어떤 헌금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까?(고후 8 : 1 - 5)

 

 

 

생각하기

 

1. 예루살렘 성전 헌금함

 

예수님은 가르치시던 장소 근처 아마도 성전 여인의 뜰 부근에서 헌금함을 보고 계셨습니다. 동전을 넣는 윗부분은 좁고 아래는 넓은 나팔 모양의 헌금함이 13개 그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각각 다른 목적의 헌금함이었는데 각각 그 용도가 적혀있었습니다. 오늘날 감사헌금, 구제헌금, 선교헌금 봉투가 있듯, 그때도 그렇게 용도에 따른 헌금함이 따로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여러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자이기 때문에 많이 넣었습니다(12:41). 헌금 눈금이 있고, 동전이 들어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기 때문에 많이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 이들은 누구보다 하나님께 많이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과부도 헌금함에 헌금을 넣었습니다. 동전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니 소리가 작습니다. 그리고 두 개였습니다. 그 당시 동전중 가장 작은 렙돈 두 개였습니다.

렙돈은 그 당시 하루품삯인 한데나리온의 1/64에 해당되는 금액으로 페소로 하면 일꾼의 하루품삯을 1500페소로 잡으면 대략 25페소 정도 됩니다.

 

2. 예수님의 판결

 

이 장면을 제자들과 같이 본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더 넣었도다 하고 판결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과부의 예물을 받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더 많이 드린 것은 부자였습니다. 얼마를 드렸지는 본문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 금액이 얼마인지를 모르신 것이 아니라 어차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것이기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의 기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이 기준은 얼마가 아니라 누가입니다. , 부자의 많은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두렙돈 중에서 예수님이 받은 것은 얼마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드렸는가입니다.

 

과부는 생활비를 전부 넣었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밖에 없었던 여인의 삶을 의미합니다. 즉 이 과부는 자신의 삶을 드린 것입니다. 믿음의 삶을 기뻐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수요일 예수님이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행태를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누가복음 2046-47) 엄중 경고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 부자들의 모습입니다.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속에는 탐욕으로 가득한 그러나 겉으로는 자신들이 신앙인인 것처럼 하는 그들의 예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두 렙돈은 참 부끄럽고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족하셨고 오히려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만족하게 바친 부자의 헌금은 부족한 것으로 보셨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삶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사랑가운데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바울도 마게도냐 지역 교회 교인들이 드린 헌금을 이렇게 전합니다.

 

고린도후서 84-5절 쉬운성경 그 교회들은 이런 은혜와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자기들도 참여하게 해 달라고 우리들에게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난 후에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에게도 주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경건의 모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경건의 능력으로 삶입니다.

 

#.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 나의 모습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의 모습은 다르지 않은지요.

 

신실한 척, 포장하고 살았던 나의 모습을 주님 앞에 내어 놓고 주님의 삶 한자락이라도 닮아가기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는 은평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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