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을 맞는 삼일절 그리고 우생마

by 로베르또 posted Feb 22, 2019 Views 46 Likes 0 Replies 0

일제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온 민족이 일어선 대한 독립만세운동은 우리 민족이 살아있음을 세계에 알리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이 끝나면서 국제정세는 미국 윌슨 대통령이 1918년 미국 국회에서 “피지배민족에게 자유롭고 공평하고 동등하게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결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민족자결을 연설하는 등 점점 뜨거웠던 식민 제국주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제국주의 열강에 뛰어든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악랄하게 수탈해갔습니다. 조선을 바탕으로 동아시아를 집어삼키려고 한 일본의 야욕은 열강들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거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19:40)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조선의 민초들이 일어섰습니다.


개신교(16명), 천도교(16명), 불교(1명)가 연대하여 민족대표 33명이 서명한 기미독립선언서를 태화관에서 낭독하며 점화된 독립만세운동의 불길은 전국적으로 급속하게 퍼져갔습니다.

교세가 불과 2%밖에 안 되었던 개신교의 모든 교회가 금식 기도와 3시 정시기도, 만세시위에 적극참여 장려하는 등 조직적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일본헌병대의 조사결과를 의하면 여성구금자 471명 중 309명이 개신교인이었다고 합니다.


3.1운동은 그 해 4월 11일 여운형, 김구, 김규식, 안창호, 이승만 등이 주축이 된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는 주춧돌이 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은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근간 되었습니다.


이러한 3.1절의 자랑스로운 역사를 읽다 보면 나중에 친일이라는 다른 역사의 길을 사람들의 이면도 보게 됩니다.

정춘수, 박희도, 최린, 최남선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해방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일본 제국주의가 영원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만세운동후 바로 올 줄 알았던 독립이 오긴커녕 오히려 내선일체로 포장한 일본의 압제는 더욱 옥죄어 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친일의 길은 살기 위한 얍삽한 선택이었습니다.


“우생마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커다란 호수에 말과 소를 동시에 던져 넣으면 둘 다 헤엄쳐서 나옵니다. 말의 헤엄 속도가 거의 소의 헤엄속도보다 두, 세배는 빨라 잽싸게 빠져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마기 큰물이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소와 말이 동시에 빠지는 소는 살아서 나오는 데 말은 익사한다고 합니다.

헤엄을 잘하는 말은 물살을 거슬려 급하게 올라가지만 이내 물살에 밀려 제자리에 맴돌다가 지쳐서 익사하고 맙니다. 그러나 소는 그냥 물살을 등에 지고 같이 떠내려갑니다. 떠내려 가면서 1미터씩 강가에서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2,3킬로를 떠내가다가 강가의 얕은 모래밭에 발이 닿고 나서야 걸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때그때 옷을 바꾸어 입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조국의 해방을 믿고 꾸준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100주년을 맞는 3.1절을 맞이하면서 우리 순국열사들이 염원했던 조국의 진정한 독립을 아직 이루지 못한 우리네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분단된 조국의 하나 됨을 위해서 기도하며 그 길을 걷고 있는 대한민국인들이 있기에 분명히 그 역사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북미정상회담과 남북경협확대 등 하나씩 하나씩 나아가다 보면 발을 딛고 나와 힘차게 뛰어 갈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입니다.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외쳐봅니다. “대한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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